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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소식
에수는 십자가 에서 죽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84세까지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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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usjames
지역: 기타 작성일: 09-26-2023 조회: 1,363

英國 BBC 방송이 밝혀내어 英國 법정서 재판으로 확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에서 재판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년 간의 조사 끝에 1982년 「성혈과 성배(The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내용을 밝힌 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성자(聖子)의 사명을 다하고자 다윗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므로 말미암아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 같이 연기를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출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르 샤토에서 수킬로 떨어진 야산 몽카르두에 있는 예수무덤

  프랑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 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 드 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해 성당기사단(聖堂騎士團,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小수도원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 기록들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9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 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예수의 27대 후손인 피에르 플랭타르씨와 그의 아들,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犬韓民國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1982. 1. 22, 중앙, 부산일보 1982. 1. 24일자 등)에서 보도(사진3 : 1982. 2. 20일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앨마 그루버, 홀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 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983년까지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 (알로에추출물) (요한복음19:40)과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명한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 13일 토리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기에 만들어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집요하게 요구하자 1997년 9월 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쌓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여호와는 그 많은 처녀들을 두고, 어찌 정혼한 남자가 있는 마리아를 택한 것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마리아는 로마병사 판델라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성령으로 임신 했다고 둘러 댔다는 것이다. 요셉은 마리아를 불쌍히 여겨 같이 살았으나 그렇게 태어 난 예수와는 늘 충돌이 있었다. 충돌 내용은 토마스 복음서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차차 알아보기로 한다..

                      

  [토마스 복음서 한글 번역 - 숨겨진 성서 2권 28~42P]

          ?  마태복음 1 :18-2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만하고 동거하기 전에 배가 부른게 나타났다.

  이에 요셉이 이를 발설치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할 대 그날 밤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네 아내 될 그녀를 버리지 마라 . . ", 자기 애인이 그 누군가에게 임신되었다면 기분 좋을 남자는 없다.

  하늘을 열고 광명속에 오던지 인간의 아들로 오려면 모든 영혼에 감동시켜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느끼게 했다면 누가 예수에 대해 이러느니 저러느니 했겠는가? 그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는 강간당해 태어난 사생아였지만 신의 아들이라 칭하며 인류에게 보편적 진리를 선언(宣言)하는 성자(聖子)의 사명자 역할을 완수하려고 하였다.

  

     ■ [ 탄생 품 ] 사해사본 중 =========================

[ 야고보 복음서 한글번역 - 숨겨진 성서 2권 41P ]

▣  마리아는 12살 때 임신했고 임신 6개월 지났을 때 목수 일을 하던 요셉이 돌아왔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발견하고는 자기 얼굴을 때리고 비통하게 말했다.

? 요 셉 : 나를 속인 그놈이 누구인가? 누가 이 처녀를 더럽혔는가?

? 마리아 : 저는 순수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 요 셉 : 언제 임신했소.

? 마리아 : 성령으로 임신했기에 언제 임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以下는 현대 성경과 동일]

  ? 마리아는 요즘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임신을 한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마리아는 판델라라는 로마병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아이를 입신했다. 이에 요셉이 분노하자 성령으로 임신했다고 둘러댔다는 것이다.

이 대목도 다큐멘터리로 방송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 [ 탄생 품 ] 예수의 진짜 아버지 ===================

   성서 역사 학자들 말에 의하면 성령탄생은 예수사후 60년이 지난 뒤부터 만들어진 이야기이고 예수의 진짜 아버지는 로마병사 판델라 였다고 한다. 이 내용도 여러 문헌에 나타나있다.

① 예수가 판델라의 아들 이라는 것은 유대 기록 [Toledoth Yeshu] 에도 있다.

② 1세기 후반 로마학자 ‘셀수스’도 예수는 로마병사 판데라의 아들이라 했다.

③ 삭제된 요세프스의 문서에도 예수는 로마병사 판데라의 아들이라 했다.[루브르 박물관]

④ 독일 바트그로이츠나흐 마을에서 발견된 판델라묘비에도 예수는 판델라의 아들이라 했다.

⑦ 제인샤버그도 예수는 판델라의 아들이라 했다. [the lllegitimacy of jesus]

⑧ 세계의 종교 342P 에서도 예수는 판델라의 아들이라 했다.

⑨ 사해사본중 `빌라도 행전1장` 에도 예수는 간통으로 태어났다는 소문에 시달린다.

                

   [사해사본 - 빌라도 행전 1장 / 한글번역 - 숨겨진 성서 2권 105~111P]

▣ 당시에 널리 퍼진 예수의 소문은 예수는 로마병사 판델라의 아들로 간통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이 내용은 독일에서 발견된 판데라 묘비문을 포함하여 역사학자들 사이에 줄곳 흥미를 돋구어왔다.

            

                         [ 사해사본 번역자 - 윌리스반스토운 - ]

▣ 동정녀 탄생은 예수 사후 수십 년 뒤 초대교회의 사도들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예수는 마리아가 외간 남자와의 정사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소문으로 언제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려졌다.

  고로 예수의 삶은 힘들었으며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었다.

                                  

  [성서역사학자 브리스칠턴]

  http://blog.daum.net/laserjet/699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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